제1회 양평 배너미고개 힐클라임 대회 후기
제1회 양평 배너미고개 힐클라임 대회
새벽 다섯 시, 아직 어둠이 남은 부엌에서 아내가 어젯밤 준비해 둔 콩나물국을 데웠다. 함박스테이크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2분을 기다리는 동안, 오늘의 길이 얼마나 가파를지를 생각했다. 따뜻한 국물로 속을 달래고, 간단히 식사를 마친 뒤 자전거를 차에 올렸다. 오늘은 제1회 양평 배너미고개 힐클라임 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옥천레포츠공원에 도착하니 아직 해가 산 너머에 걸려 있었다. 본부석에서는 준비가 한창이었다.노란조끼를 입은 봉사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7시 반이 지나자 라이더들이 속속 도착했다. 차량 지붕마다 걸린 자전거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본부석에서 등록을 마치고 받은 배번과 헬멧에 번호표를 붙였다. 8시 내빈들의 소개와 인사가 이어졌다. 8시40분 출발선으로 이동했다.총성이 울렸다. 수십 대의 자전거가 일제히 페달을 밟았다.
출발 후 3.4km, 용천3리 체험관까지는 경사가 완만했다. 좁은 차도를 가득 메운 행렬이 일정한 속도로 달렸다. 그러나 퍼레이드 구간이 끝나자마자 길은 성격을 바꿨다. 평균 경사 9.3%, 최대 23%. 바퀴가 비탈을 오를수록 호흡이 거칠어졌다.
앞에서는 쭉쭉 나가는 라이더들이 있었고, 나는 뒤로 밀렸다. 마치 명량의 올돌목에서 물살에 밀리던 배처럼, 뒤로 뒤로 흘렀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산소 대신 고통이 폐를 채웠다. 생각은 사라지고, 남은 건 오직 숨소리뿐이었다. 페달을 밟을수록 근육이 타들었다. 체온이 올라가며 헬멧 안이 뿌옇게 김으로 찼다. 실력의 차이, 구력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났다.
오늘 참가한 62명의 라이더 중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남자부 1위 윤중헌 선수, 여자부 1위 김미소 선수가 있었다. 대부분 선수들은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한 실력자들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오늘의 경쟁 상대는 타인이 아니라, 어제의 나였다. 비록 꼴찌에 가까운 성적이라도, 내일을 위한 오늘을 달린다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자리에 선 이유였다.
양평은 오래전부터 싸움의 길목이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한양으로 향하던 길, 이곳이 방어의 최전선이었다.
구한말, 나라가 무너질 때 양평의 산속에서는 농기구를 든 의병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그들이 외쳤던 독립의 숨결은 3·1운동으로 이어졌고, 무려 15차례에 걸쳐 2만 8천여 명이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이곳은 민족의 자주와 평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몽양 여운형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길이, 어쩌면 그들의 발자국 위일지도 모른다.
400년 전, 칼 대신 괭이를 들고 싸웠던 '지평의병'들도 이런 숨으로 산을 올랐을까.
그들의 숨결이 바람에 남아 내 페달을 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경사도는 점점 가팔라졌다. 뱀의 꼬리를 타고 들어가듯 굽이진 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땀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고, 허벅지는 타오르는 쇳덩이 같았다.
“덜거덕.”
체인이 빠졌다.내 조국도 그렇게 끊어졌던 적이 있었다.
뒤따르던 모터 마샬이 다가와 체인을 다시 걸어주며 등을 밀어주었다.
그 순간, 다시 연결된 것은 체인만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과거와 현재, 역사가 그렇게 서로를 밀어올리고 있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숨이 끊어질 듯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기록요원이 외쳤다.
“죽을 맛이에요.”
내가 대답하자 웃으며 말했다.
“따뜻한 오뗑 국물 있어요. 살맛 날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이상하게 힘이 났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마지막 힘을 짜냈다.
마침내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페달이 멈추자 온몸의 힘이 빠졌다.
정상이었다.
숨은 뜨겁게 타올랐고, 바람은 그 숨결을 천천히 식혀주었다.
오늘 내가 오른 것은 단지 배너미고개가 아니었다.
이 길은 수백 년을 이어온 한민족의 오르막이었다.
의병의 산, 독립의 길, 그리고 지금의 나까지—모두가 한 줄기의 숨으로 이어져 있었다.
나라를 빼앗긴 설움의 오르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2·3 내란의 밤을 지나 오늘도 우리는, 다시 그 오르막을 오르고있다.
양평은 항쟁의 시작이자, 여전히 진행 중인 오르막의 끝자락이다.
숨을 고르며 나는 생각했다.
숨이 있는 한, 우리 민족의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절대로!
새벽 다섯 시, 아직 어둠이 남은 부엌에서 아내가 어젯밤 준비해 둔 콩나물국을 데웠다. 함박스테이크를 전자레인지에 넣고 2분을 기다리는 동안, 오늘의 길이 얼마나 가파를지를 생각했다. 따뜻한 국물로 속을 달래고, 간단히 식사를 마친 뒤 자전거를 차에 올렸다. 오늘은 제1회 양평 배너미고개 힐클라임 대회가 열리는 날이다.
옥천레포츠공원에 도착하니 아직 해가 산 너머에 걸려 있었다. 본부석에서는 준비가 한창이었다.노란조끼를 입은 봉사자들의 발걸음이 분주했다. 7시 반이 지나자 라이더들이 속속 도착했다. 차량 지붕마다 걸린 자전거들이 햇살을 받아 반짝였다. 본부석에서 등록을 마치고 받은 배번과 헬멧에 번호표를 붙였다. 8시 내빈들의 소개와 인사가 이어졌다. 8시40분 출발선으로 이동했다.총성이 울렸다. 수십 대의 자전거가 일제히 페달을 밟았다.
출발 후 3.4km, 용천3리 체험관까지는 경사가 완만했다. 좁은 차도를 가득 메운 행렬이 일정한 속도로 달렸다. 그러나 퍼레이드 구간이 끝나자마자 길은 성격을 바꿨다. 평균 경사 9.3%, 최대 23%. 바퀴가 비탈을 오를수록 호흡이 거칠어졌다.
앞에서는 쭉쭉 나가는 라이더들이 있었고, 나는 뒤로 밀렸다. 마치 명량의 올돌목에서 물살에 밀리던 배처럼, 뒤로 뒤로 흘렀다.
숨이 턱끝까지 차올랐다. 산소 대신 고통이 폐를 채웠다. 생각은 사라지고, 남은 건 오직 숨소리뿐이었다. 페달을 밟을수록 근육이 타들었다. 체온이 올라가며 헬멧 안이 뿌옇게 김으로 찼다. 실력의 차이, 구력의 차이가 명확히 드러났다.
오늘 참가한 62명의 라이더 중에는 누구나 인정하는 남자부 1위 윤중헌 선수, 여자부 1위 김미소 선수가 있었다. 대부분 선수들은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경험한 실력자들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오늘의 경쟁 상대는 타인이 아니라, 어제의 나였다. 비록 꼴찌에 가까운 성적이라도, 내일을 위한 오늘을 달린다는 것, 그것이 내가 이 자리에 선 이유였다.
양평은 오래전부터 싸움의 길목이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한양으로 향하던 길, 이곳이 방어의 최전선이었다.
구한말, 나라가 무너질 때 양평의 산속에서는 농기구를 든 의병이 들불처럼 일어났다.
그들이 외쳤던 독립의 숨결은 3·1운동으로 이어졌고, 무려 15차례에 걸쳐 2만 8천여 명이 만세를 외쳤다.
그리고 이곳은 민족의 자주와 평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몽양 여운형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지금 내가 밟고 있는 이 길이, 어쩌면 그들의 발자국 위일지도 모른다.
400년 전, 칼 대신 괭이를 들고 싸웠던 '지평의병'들도 이런 숨으로 산을 올랐을까.
그들의 숨결이 바람에 남아 내 페달을 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경사도는 점점 가팔라졌다. 뱀의 꼬리를 타고 들어가듯 굽이진 길이 끝없이 이어졌다. 땀은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고, 허벅지는 타오르는 쇳덩이 같았다.
“덜거덕.”
체인이 빠졌다.내 조국도 그렇게 끊어졌던 적이 있었다.
뒤따르던 모터 마샬이 다가와 체인을 다시 걸어주며 등을 밀어주었다.
그 순간, 다시 연결된 것은 체인만이 아니었다.
사람과 사람, 과거와 현재, 역사가 그렇게 서로를 밀어올리고 있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숨이 끊어질 듯했다.
“조금만 더 힘내세요!”
기록요원이 외쳤다.
“죽을 맛이에요.”
내가 대답하자 웃으며 말했다.
“따뜻한 오뗑 국물 있어요. 살맛 날 겁니다.”
그 말을 들은 순간, 이상하게 힘이 났다. 나는 고개를 숙이고 마지막 힘을 짜냈다.
마침내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페달이 멈추자 온몸의 힘이 빠졌다.
정상이었다.
숨은 뜨겁게 타올랐고, 바람은 그 숨결을 천천히 식혀주었다.
오늘 내가 오른 것은 단지 배너미고개가 아니었다.
이 길은 수백 년을 이어온 한민족의 오르막이었다.
의병의 산, 독립의 길, 그리고 지금의 나까지—모두가 한 줄기의 숨으로 이어져 있었다.
나라를 빼앗긴 설움의 오르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12·3 내란의 밤을 지나 오늘도 우리는, 다시 그 오르막을 오르고있다.
양평은 항쟁의 시작이자, 여전히 진행 중인 오르막의 끝자락이다.
숨을 고르며 나는 생각했다.
숨이 있는 한, 우리 민족의 역사는 멈추지 않는다. 절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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